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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방을 노래한 시인들

일제강점기 시인 시선집

정성스럽게 벼려 낸 모국어를 통해 시대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낸 일제강점기 시인 7인의 시를 모았다. 한용운, 이상화, 심훈, 김영랑, 정지용,이육사, 윤동주의 시를 통해 어두운 시절에 새벽을 기다리며 해방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. 또한 굳게 지켜 낸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엿보며, 이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조언을 얻을 수 있다.
정성스럽게 벼려 낸 모국어를 통해 시대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낸 일제강점기 시인 7인의 시를 모았다. 한용운, 이상화, 심훈, 김영랑, 정지용,이육사, 윤동주의 시를 통해 어두운 시절에 새벽을 기다리며 해방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. 또한 굳게 지켜 낸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엿보며, 이를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조언을 얻을 수 있다.
한용운
(韓龍雲,  1879년  8월 29일 (음력 7월 12일)~ 1944년  6월 29일)
-일제강점기 시인,  승려,  독립운동가,
-호는 만해(萬海).
-불교를 통한 언론, 교육 활동을 함.
-3·1 만세 운동 당시 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.
-독립선언서에 "공약 3장"을 추가하고, 독립선언서 낭독.
-옥중에서 '조선 독립의 서'(朝鮮獨立之書)를 지음.
-1926년 시집 《님의 침묵》을 출판.
-1927년  2월 신간회에 참여.
-작품 활동 : 《님의 침묵》, 《조선불교유신론》, 《불교대전》, 《십현담주해》, 《불교와 고려제왕》 등.

이상화
(李相和, 1901년 4월 5일~1943년 4월 25일)
-일제강점기 시인,  작가,  독립운동가,  문학 평론가,  번역 문학가, 교사, 권투선수.
-본관은 경주(慶州),  호는 상화(尙火, 想華), 무량(無量), 백아(白啞).
-1919년 경북 대구부에서 3·1 만세 운동 거사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피신.
-1921년에 현진건의 소개로 월탄 박종화(朴鍾和)와 만나 〈백조〉 동인에 참여. 
-1922년  《백조》1~2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.
-1943년 4월 25일, 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부에서 위암과 결핵의 합병증으로 사망.
-작품 활동 : 《백조》, 《개벽》, 《문예운동》, 《삼천리》, 《여명》, 《신여성》, 《조선문단》, 《조선지광》, 《별건곤》등 잡지에 〈나의 침실로〉, 〈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〉, 〈대구 행진곡〉, 〈서러운 해조〉등 60여 편의 작품 발표

심훈
(沈熏, 1901년 10월 23일~1936년 9월 16일)
-일제강점기  독립운동가,  소설가,  시인,  언론인,  배우,  영화감독, 시나리오  각본가.
-본명 심대섭(沈大燮), 아명 삼보(三保), 삼준(三俊)
-1919년  3·1 운동에 참여하여 투옥, 학교에서 퇴학.
-1920년~1922년 중국에 망명. 신채호, 이회영과 교우하며 독립운동.
-1924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. ‘철필구락부사건’으로 해직.
-1927년 일본으로 건너가 영화 공부, 영화 《먼동이 틀 때》 제작.
-1935년 《동아일보》 장편소설 공모에 소설 《상록수》를 집필해 당선.
-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.
-작품 활동 : 《영원의 미소》, 《상록수》, 《직녀성》, 《그 날이 오면》, 《먼동이 틀 때》, 《동방의 애인》, 《불사조》, 《기남의 모험》, 《새벗》, 《오월의 비상》, 《황공의 최후》, 《뻐꾹새가 운다》

정지용
(鄭芝溶,  1902년 6월 20일 (음력 5월 15일)~ 1950년)
-일제강점기 시인, 교사.
-아명은 지용(池龍).
-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 영문과 유학 시절인 1926년 6월 《학조 學潮》에 시 〈카페 프란스〉 등을 발표.
-1929년 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이후 8·15 해방 때까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재직.
-1930년 《시문학》의 동인으로 참가.
-1933년 《가톨릭 청년》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(李箱)의 시를 세상에 알림. 같은 해에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(九人會)에 가담.
-1939년 《문장》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 박목월· 조지훈· 박두진 등의 청록파 시인을 등단시킴.
-1946년에는 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및 가톨릭계 신문인 〈경향신문〉 주간.
-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정치보위부로 끌려가 구금됨. 정인택, 김기림. 박영희 등과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가 평양 감옥으로 이관되는 도중 또는 이관된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음.
-작품 활동 : 〈향수(鄕愁)〉, 〈유리창〉, 〈바다9〉, 〈비〉, 〈장수산(長壽山)〉, 〈소설〉 〈삼인(三人)〉, 〈춘설〉, 〈고향〉

김영랑
(金永郞, 1903년 1월 16일 (1902년 음력 12월 18일)~1950년 9월 29일)
-일제강점기 시인.
-본명은 김윤식(金允植)
-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.
-1919년 3·1 운동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강진에서 의거하다 체포, 6개월간 옥고를 치름.
-1920년 일본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서 공부하다가 간토 대지진 때 귀국.
-1930년 정지용, 박용철 등과 함께 《시문학》 동인에 가입, 본격적인 문학 활동 시작,대표작 〈모란이 피기까지는〉은 이 무렵 쓴 시. 순수서정시에 집중.
-1935년 첫째 시집 《영랑시집》 간행.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뚜렷해지자 〈독(毒)을 품고〉등의 저항시 씀.
-신사참배, 창씨 개명 등에 저항하여 두어 차례 붓을 꺾기도 하였으나 해방 후에는 시작 활동에 전념‘
-고향인 강진에서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, 공보부에서 활동.
-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 전투 중 포탄 파편에 맞아 48세로 사망.
-작품 활동 :시집 《영랑시집》 (1935), 시〈모란이 피기까지는〉, <돌담에 속삭이는 햇발>

이육사
(李陸史, 1904년 5월 18일 (음력 4월 4일) ~ 1944년 1월 16일)
-일제강점기 문학인, 언론인, 독립운동가.
-본명 이활(李活), 개명 전 이름 이원록(李源祿), 이원삼(李源三), ‘이육사’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'264'의 음을 딴 이름
-1925년 의열단 가입.
-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투옥.
-1930년 《조선일보》에 <말>을 발표하며 등단.
-1931년 ‘대구 격문 사건’의 배후로 지목되어 투옥.
-1933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1기생 졸업.
-1936년 《조선일보》에 〈루쉰 추도문〉 연재. 루쉰의 단편소설 〈고향〉 번역.
-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주재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사망.
-살아생전 시집을 출간하지 못하였고 순국 후, 문학평론가인 둘째 동생 이원조가 이육사의 시를 모아 1946년 유고시집인 《육사시집》 출간.

윤동주
(尹東柱, 1917년 12월 30일~1945년 2월 16일)
-일제강점기 시인, 독립운동가.
-아호는 해환(海煥).
-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(明東村)에서 출생.
-1925년 명동소학교(明東小學校)에 입학하여 재학 시절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《새 명동》 발간
-1939년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《소년(少年)》 지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.
-1942년 교토 도시샤 대학 (同志社大學)에 입학.
-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후쿠오카 형무소(福岡刑務所)에 투옥,
-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옥중에서 요절.
-사후에 시집 《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》 출간.


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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